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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작가비평 / 조은시의 비스듬한 세계 / 최희승 큐레이터
조은시의 비스듬한 세계
최희승 (독립 큐레이터)
초현실적인 분위기와 게임 그래픽을 닮은 화면 분할, 기호처럼 선명하게 그려진 도상들과 나무 패널 위의 안료가 만들어내는 흐릿한 질감, 평면 바깥으로 빠져나와 공간을 점유하려는 성질에 이르기까지. 먼 과거의 회화를 떠오르게 하면서도 새로운 감각을 지닌 조은시의 작업에는 익숙한 도상들이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그려져 있지만 그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단번에 알 수 없다. 표면에 나타난 흰 색 사선이나 붉은 포물선을 따라간다면, 나누어진 화면 사이의 관계를 이해한다면, 도상마다 지니고 있는 의미를 파악한다면 그림의 이야기를 알아보게 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작품을 감상하는 데 얼마큼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가. 작품 앞 이어지는 질문 속에서 분명한 것은 깃발과 벌판, 돌산과 채석장, 사과, 사다리, 빗자루 등 프레임 안팎에 놓인 도상들이 청중 또는 플레이어를 전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크고 작은 해석의 단계를 거쳐야 하는 작업의 미스터리함과 조은시의 회화를 통해 어떤 감각의 획득을 기대할 것인가에 대한 답변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1 회화에서 평면으로 이루어진 공간을 만나는 일이나 묘사나 색감의 화려함을 기대했다면 여기에선 그와 반대 지점 즉 이성적인 접근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마치 그림으로만 제시된 수수께끼 숨은그림찾기 (Hidden pictures)를 대하듯 이미지 사이의 닮은 점과 차이점을 통해 규칙과 질서를 발견하고, 함축된 상징을 풀어내 연결하는 방식을 접근법 중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일반적인 수수께끼와 달리 이 작품들이 제시하는 문제들은 답을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느새 미궁에 빠뜨리기도 하고 실마리를 거의 찾을 수 없을 때도 있으며 상식과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보편성과 개별성 사이에 위치한 세계를 만들어 관객을 초대하고 그들의 읽어내기 또는 미끄러지기의 놀이 (play)를 관찰하는 일까지 그의 작업을 완결하는 과정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조은시는 평소에 자전거를 타고 주변을 배회하며 소재를 관찰하거나 수집하고 백과사전의 도판이나 인터넷에서 발견한 대상의 대표적인 모습을 참고하여 이미지를 만들어낸다.2 그가 캔버스 천이 아닌 나무 패널을 주요 재료로 삼아 그림을 그리거나 입체, 설치로 형식을 확장하는 이유 또한 회화를 읽는 기존의 방식에 덧붙여 다른 감각을 유도하려는 목적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자작나무의 매끄럽고 건조한 표면 위에 유화, 아크릴 물감이 스며든 색감과 질감은 두꺼운 종이 위에 마커를 쓴 것처럼 순간적이면서도 오래된 느낌을 동시에 전달한다. 그뿐만 아니라 목재는 설치 작업 속 테이블의 재료나 구조를 위한 재료로써 등장하기도 하고 ‘숲속의 나무’와 같은 회화적인 상징으로 나타나면서 다층적으로 기능한다. 개인전 <<사우스포 (SouthPaw)>>에서 FIM 갤러리 공간 전면에 구현한 사다리 구조 역시 기능, 의미, 조형, 재료를 자유롭고 능숙하게 함축시키는 조은시의 방법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의 저서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2007)에서 설명하는 변형과 압축을 사용하는 농담의 기법과 청자의 동일성과 유사성의 차이를 알아차리는 능력에 의존하는 방식, 사회적인 성격과 유희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조은시의 개념 전개 방식과 농담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3 마치 농담을 펼쳐놓는 사람처럼 작가는 특정한 연상 작용과 사고를 발생시키는 트리거로서의 그림 내부를 추적, 배회하게 한다. 예를 들어 <일기토> (2026)를 살펴보면 전쟁의 승패를 걸고 일대일로 대결하는 장수의 비장함은 자그마한 흑돌과 백돌의 뾰족한 부딪침으로 환치되어 일종의 농담이 발생하는 코드가 된다. 내용에 비해 과도한 화폭의 크기와 상대적으로 적막한 하늘과 산, 회전초의 이미지는 그가 심어둔 코드의 효과적인 작동을 돕는다. 3분할 구성, 대결구도, 각자 역할을 부여 받은 그림의 요소들은 보는 사람의 시선이 안쪽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시 메인 (Mainstream)으로 돌아오게 하는 인터페이스로 자리하고 있다.
좀 더 전반적인 작업의 흐름에서 위와 같이 개념을 설계하는 경향은 그래픽 게임의 시각적인 구조를 계산하고 구현하는 프로그래머의 면모로 보이기도 한다. 현재까지 드러난 조은시의 관심사를 압축적으로 나열해 본다면 자연현상과 게임의 형식, 가족 또는 관성적인 것, 회화로 요약해 볼 수 있는데, 게임과 가족, 관성과 회화가 작가에게 환경이자 주어진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면 자연현상은 최근의 선택이 반영된 주제이다.4 주목할 것은 나무에 매달린 열매가 중력에 의해 떨어지는 것, 큰 바위나 돌이 풍화되어 작은 모래알이 되는 것, 빙하가 녹아 바다로 흘러가는 것, 우주와 낮과 밤, 나무가 모여 숲이 되는 일 등 실제 경험한 자연이 아니라 자명한 사실이자 명제, 대명사와 같이 객관적인 대상, 표정이 없는 현상으로서 선택, 재현, 변형하고 유희할 수 있는 기호로서의 자연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작가는 마치 게임 인터페이스를 고르듯이 산, 바다, 숲, 광야, 빙하, 우주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살짝 비틀어 둔다.
여기에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조은시의 작업에서 도상을 읽고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감상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가. 종합해 보면 주어진 조형이 지닌 논리/비논리의 구조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일이 거의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모든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다. 이것이 첫인상에서 친숙해 보이는 그의 그림이 바라볼수록 낯설고 비스듬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와 덧붙여 볏짚-짚단-싸리 빗자루, 나무-열매-호두와 같이 비교적 합리적으로 흘러가다 가도 다른 편에서 개입하는 풀의 삼단논법과 같은 비약과 메타포는 논리를 이성이 아닌 감각의 차원으로 이동시킨다.5 미루어 보건대 현재 작가는 해석 불가능한 맥락을 말하려는 것이 아닌, 닮음을 매개로 범용적인 구조를 만들고 변칙적인 차원에서 작동시키는 일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조은시의 세계에는 그가 주목한 다양한 것들이 질서와 빗 각의 기울기를 가지고 맞물려 있다. 그는 설계자와 같은 태도로 만나지 않을 것만 같은 것들을 병치하고 나름의 논리를 지닌 농담의 방식으로, 전통적인 회화의 조형 언어와 실험적인 접근을 함께 구사하며 쌓아 나가는 과정에 있다.6 상징, 함축, 변형과 반복하기의 방식 등이 주요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통용되는 관습적인 것과 무의식적인 것, 개인의 역사와 예술가로서의 의식을 오고 가면서 이 세계는 조금씩 확장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인가? 앞서 농담으로 일컬어본 구조를 좀 더 촘촘하게 만드는 일에 집중할 것인가? 평면과 입체, 회화와 설치 등 다양한 매체와 조형을 설득력 있게 구사하는 형식 실험을 이어갈 것인가? 혹은 그 사이에서 만들어낸 메타포와 내러티브가 두드러지게 될까? 공평하게 균형을 잡은 듯한 지금의 키워드가 어떻게 확장하게 될지 이후의 질문들이 드러나고 있다.
1) 조은시는 이러한 표현 방식에 대하여 스스로 ‘에둘러 말하기’라고 정의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게 회화는 설명이나 답을 제시하는 매체가 아니라 사유가 지각으로 전환되는 장소이자 의미가 생성되고 흔들리는 과정이 드러나는 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조은시 회화의 논리에 대한 연구: 분할, 알레고리, 계열화」, 2025, pp.23-24.
2) 작가 인터뷰, 2025년 2월 6일, 본문에서 언급한 보편성과 개별성을 오고 가는 일이 조은시의 이미지 수집 방식에서도 나타난다는 점은 흥미롭다. 자전거 위에서 빠르게 스쳐가는 일상적인 것들을 둘러보았을 그의 시선과 다른 한편 가장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이미지를 찾기 위해 백과사전의 이미지를 참고하는 방식이 서로 중첩된다.
3) 지그문트 프로이트, 임인주 역,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 열린책들, 2007
4) 본문에서 게임을 관성적인 것으로 분류하는 이유에 대하여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게임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환경에서 자라 왔음을 밝힌 바 있다. 조은시, 위의 논문, p.56.
5) 영국의 인류학자이자 사회학자인 그레고리 베이트슨 (Gregory Bateson)이 주장한 풀의 삼단논법 (Syllogism in Grass)은 전통적인 삼단논법과 대조적으로 메타포, 생태적 연결을 강조하는 논리 전개 방식이다. 대표적인 예시로 ‘풀은 죽는다-사람은 죽는다-사람은 풀이다’가 있다. 조은시는 논리적 비약을 지닌 베이트슨의 삼단논법이 자신의 사고 체계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그레고리 베이트슨, 박대식 역, 『마음의 생태학』, 책세상, 2006, p. 336-337 재참조, 조은시 인터뷰, 2025년 2월 6일.
6) ‘나름대로의 논리’라는 표현은 조은시, 위의 논문, p. 20에서 인용한 것이다.
초현실적인 분위기와 게임 그래픽을 닮은 화면 분할, 기호처럼 선명하게 그려진 도상들과 나무 패널 위의 안료가 만들어내는 흐릿한 질감, 평면 바깥으로 빠져나와 공간을 점유하려는 성질에 이르기까지. 먼 과거의 회화를 떠오르게 하면서도 새로운 감각을 지닌 조은시의 작업에는 익숙한 도상들이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그려져 있지만 그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단번에 알 수 없다. 표면에 나타난 흰 색 사선이나 붉은 포물선을 따라간다면, 나누어진 화면 사이의 관계를 이해한다면, 도상마다 지니고 있는 의미를 파악한다면 그림의 이야기를 알아보게 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작품을 감상하는 데 얼마큼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가. 작품 앞 이어지는 질문 속에서 분명한 것은 깃발과 벌판, 돌산과 채석장, 사과, 사다리, 빗자루 등 프레임 안팎에 놓인 도상들이 청중 또는 플레이어를 전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크고 작은 해석의 단계를 거쳐야 하는 작업의 미스터리함과 조은시의 회화를 통해 어떤 감각의 획득을 기대할 것인가에 대한 답변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1 회화에서 평면으로 이루어진 공간을 만나는 일이나 묘사나 색감의 화려함을 기대했다면 여기에선 그와 반대 지점 즉 이성적인 접근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마치 그림으로만 제시된 수수께끼 숨은그림찾기 (Hidden pictures)를 대하듯 이미지 사이의 닮은 점과 차이점을 통해 규칙과 질서를 발견하고, 함축된 상징을 풀어내 연결하는 방식을 접근법 중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일반적인 수수께끼와 달리 이 작품들이 제시하는 문제들은 답을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느새 미궁에 빠뜨리기도 하고 실마리를 거의 찾을 수 없을 때도 있으며 상식과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보편성과 개별성 사이에 위치한 세계를 만들어 관객을 초대하고 그들의 읽어내기 또는 미끄러지기의 놀이 (play)를 관찰하는 일까지 그의 작업을 완결하는 과정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조은시는 평소에 자전거를 타고 주변을 배회하며 소재를 관찰하거나 수집하고 백과사전의 도판이나 인터넷에서 발견한 대상의 대표적인 모습을 참고하여 이미지를 만들어낸다.2 그가 캔버스 천이 아닌 나무 패널을 주요 재료로 삼아 그림을 그리거나 입체, 설치로 형식을 확장하는 이유 또한 회화를 읽는 기존의 방식에 덧붙여 다른 감각을 유도하려는 목적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자작나무의 매끄럽고 건조한 표면 위에 유화, 아크릴 물감이 스며든 색감과 질감은 두꺼운 종이 위에 마커를 쓴 것처럼 순간적이면서도 오래된 느낌을 동시에 전달한다. 그뿐만 아니라 목재는 설치 작업 속 테이블의 재료나 구조를 위한 재료로써 등장하기도 하고 ‘숲속의 나무’와 같은 회화적인 상징으로 나타나면서 다층적으로 기능한다. 개인전 <<사우스포 (SouthPaw)>>에서 FIM 갤러리 공간 전면에 구현한 사다리 구조 역시 기능, 의미, 조형, 재료를 자유롭고 능숙하게 함축시키는 조은시의 방법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의 저서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2007)에서 설명하는 변형과 압축을 사용하는 농담의 기법과 청자의 동일성과 유사성의 차이를 알아차리는 능력에 의존하는 방식, 사회적인 성격과 유희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조은시의 개념 전개 방식과 농담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3 마치 농담을 펼쳐놓는 사람처럼 작가는 특정한 연상 작용과 사고를 발생시키는 트리거로서의 그림 내부를 추적, 배회하게 한다. 예를 들어 <일기토> (2026)를 살펴보면 전쟁의 승패를 걸고 일대일로 대결하는 장수의 비장함은 자그마한 흑돌과 백돌의 뾰족한 부딪침으로 환치되어 일종의 농담이 발생하는 코드가 된다. 내용에 비해 과도한 화폭의 크기와 상대적으로 적막한 하늘과 산, 회전초의 이미지는 그가 심어둔 코드의 효과적인 작동을 돕는다. 3분할 구성, 대결구도, 각자 역할을 부여 받은 그림의 요소들은 보는 사람의 시선이 안쪽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시 메인 (Mainstream)으로 돌아오게 하는 인터페이스로 자리하고 있다.
좀 더 전반적인 작업의 흐름에서 위와 같이 개념을 설계하는 경향은 그래픽 게임의 시각적인 구조를 계산하고 구현하는 프로그래머의 면모로 보이기도 한다. 현재까지 드러난 조은시의 관심사를 압축적으로 나열해 본다면 자연현상과 게임의 형식, 가족 또는 관성적인 것, 회화로 요약해 볼 수 있는데, 게임과 가족, 관성과 회화가 작가에게 환경이자 주어진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면 자연현상은 최근의 선택이 반영된 주제이다.4 주목할 것은 나무에 매달린 열매가 중력에 의해 떨어지는 것, 큰 바위나 돌이 풍화되어 작은 모래알이 되는 것, 빙하가 녹아 바다로 흘러가는 것, 우주와 낮과 밤, 나무가 모여 숲이 되는 일 등 실제 경험한 자연이 아니라 자명한 사실이자 명제, 대명사와 같이 객관적인 대상, 표정이 없는 현상으로서 선택, 재현, 변형하고 유희할 수 있는 기호로서의 자연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작가는 마치 게임 인터페이스를 고르듯이 산, 바다, 숲, 광야, 빙하, 우주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살짝 비틀어 둔다.
여기에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조은시의 작업에서 도상을 읽고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감상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가. 종합해 보면 주어진 조형이 지닌 논리/비논리의 구조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일이 거의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모든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다. 이것이 첫인상에서 친숙해 보이는 그의 그림이 바라볼수록 낯설고 비스듬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와 덧붙여 볏짚-짚단-싸리 빗자루, 나무-열매-호두와 같이 비교적 합리적으로 흘러가다 가도 다른 편에서 개입하는 풀의 삼단논법과 같은 비약과 메타포는 논리를 이성이 아닌 감각의 차원으로 이동시킨다.5 미루어 보건대 현재 작가는 해석 불가능한 맥락을 말하려는 것이 아닌, 닮음을 매개로 범용적인 구조를 만들고 변칙적인 차원에서 작동시키는 일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조은시의 세계에는 그가 주목한 다양한 것들이 질서와 빗 각의 기울기를 가지고 맞물려 있다. 그는 설계자와 같은 태도로 만나지 않을 것만 같은 것들을 병치하고 나름의 논리를 지닌 농담의 방식으로, 전통적인 회화의 조형 언어와 실험적인 접근을 함께 구사하며 쌓아 나가는 과정에 있다.6 상징, 함축, 변형과 반복하기의 방식 등이 주요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통용되는 관습적인 것과 무의식적인 것, 개인의 역사와 예술가로서의 의식을 오고 가면서 이 세계는 조금씩 확장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인가? 앞서 농담으로 일컬어본 구조를 좀 더 촘촘하게 만드는 일에 집중할 것인가? 평면과 입체, 회화와 설치 등 다양한 매체와 조형을 설득력 있게 구사하는 형식 실험을 이어갈 것인가? 혹은 그 사이에서 만들어낸 메타포와 내러티브가 두드러지게 될까? 공평하게 균형을 잡은 듯한 지금의 키워드가 어떻게 확장하게 될지 이후의 질문들이 드러나고 있다.
1) 조은시는 이러한 표현 방식에 대하여 스스로 ‘에둘러 말하기’라고 정의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게 회화는 설명이나 답을 제시하는 매체가 아니라 사유가 지각으로 전환되는 장소이자 의미가 생성되고 흔들리는 과정이 드러나는 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조은시 회화의 논리에 대한 연구: 분할, 알레고리, 계열화」, 2025, pp.23-24.
2) 작가 인터뷰, 2025년 2월 6일, 본문에서 언급한 보편성과 개별성을 오고 가는 일이 조은시의 이미지 수집 방식에서도 나타난다는 점은 흥미롭다. 자전거 위에서 빠르게 스쳐가는 일상적인 것들을 둘러보았을 그의 시선과 다른 한편 가장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이미지를 찾기 위해 백과사전의 이미지를 참고하는 방식이 서로 중첩된다.
3) 지그문트 프로이트, 임인주 역,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 열린책들, 2007
4) 본문에서 게임을 관성적인 것으로 분류하는 이유에 대하여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게임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환경에서 자라 왔음을 밝힌 바 있다. 조은시, 위의 논문, p.56.
5) 영국의 인류학자이자 사회학자인 그레고리 베이트슨 (Gregory Bateson)이 주장한 풀의 삼단논법 (Syllogism in Grass)은 전통적인 삼단논법과 대조적으로 메타포, 생태적 연결을 강조하는 논리 전개 방식이다. 대표적인 예시로 ‘풀은 죽는다-사람은 죽는다-사람은 풀이다’가 있다. 조은시는 논리적 비약을 지닌 베이트슨의 삼단논법이 자신의 사고 체계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그레고리 베이트슨, 박대식 역, 『마음의 생태학』, 책세상, 2006, p. 336-337 재참조, 조은시 인터뷰, 2025년 2월 6일.
6) ‘나름대로의 논리’라는 표현은 조은시, 위의 논문, p. 20에서 인용한 것이다.
2025 / 개인전 《트윈 플레임(Twin Flame)》 비평 조은시 회화에서 닮음의 구조와 징후 / 이성휘 큐레이터
조은시 회화에서 닮음의 구조와 징후 / 이성휘 큐레이터
조은시 회화에서 닮음의 구조와 징후
이성휘
조은시는 닮음에 대한 사유를 회화의 기호 체계로 시각화 한다. 그의 회화는 단순한 풍경이나 대상의 재현에 머무르지 않고, 기호와 상징, 기하학적인 형태, 언어 유희를 통해 지적인 플레이를 시도한다. 닮음은 단지 외형적인 유사성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어떤 내적 질서나 관계의 구조로 작동하며. 논리를 넘어선 새로운 질서를 암시하기도 한다. 그의 회화는 어떤 의미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간접적이고 파편적인 징후들을 통해서 암시함으로써, 관람자로 하여금 단서를 수집하고, 규칙을 유추하며, 인과 관계를 스스로 구성하도록 유도한다. 이 글은 개인전《트윈 플레임(Twin Flame)》에서 조은시가 시도한 닮음의 구조가 보이지 않는 힘이나 체계의 질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논하고자 한다.
전시 제목인 ’트윈 플레임(Twin Flame)’은 ‘쌍둥이 불꽃’ 정도로 해석이 된다. 의미를 좀 더 파악하자면, 한 영혼이 둘로 나뉘어 서로 다른 두 사람 안에 존재한다는 믿음에 기반하여 거울처럼 비추는 강렬한 관계로 볼 수 있다. 조은시는 회화 또는 회화에 기반한 설치 작업을 통해 자신의 사유를 펼쳐왔으며, 이번 개인전 제목 역시 창작의 숙명을 짊어진 작가로서, 자신의 지적 사고의 출발이 되는 계기나 사건, 또는 이를 통해 도달해야 하는 예술 그 자체를 암시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트윈 플레임’은 개인과 개인, 부분과 전체의 관계가 닮음이나 불가항력적인 연결에 의해 상호 공명하는 상태를 시각화 하고자 한 작가의 의지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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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된 작품들에는 산, 바다, 비, 파도, 바람, 나무, 돌 등 자연으로 인지되는 요소들과, 점, 원, 직선, 곡선 등으로 인지되는 기하학적 도형이나 기호들이 혼재한다. 사용된 재료들도 캔버스 천 위에 그린 그림도 있지만, 합판을 지지대 삼아 그린 그림이 좀 더 많다. 합판 위에서 다양한 형상이 서로 대응, 비례, 순열적인 질서를 구축하며 다채롭게 구성된 작품들은 무균실처럼 새하얀 전시장 공간의 사방 벽과 마름모꼴 바닥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고, 한 두 작품이 도드라져 보이기 보다는 모든 작품이 동등한 존재감을 갖도록 디스플레이 되었다. 이때 회화와 오브제의 주요한 지지대 역할을 하는 합판의 물성이 두드러졌는데, 이 합판과 그 위에 채색된 유화 물감, 붓질, 선묘 등의 차이는 시각적인 것 이상으로 작품들을 서로 연결했다. 멀리서 보면 조용한 질서가, 가까이서 보면 예상치 못한 차이와 반복이 섬세한 리듬을 형성한다.
전시장 입구 가까이에 설치된 <방법론적 접근>(2025)은 단순한 풍경의 재현이 아니라 작가가 세계를 인식하고 구성하는 하나의 방법 자체를 시각화 하여 제시한다. 화면 중앙의 산은 상대적으로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현실의 산과 닮았으며, 하단의 드로잉과 상단의 붉은 삼각형도 중앙의 산과 포괄적인 닮음을 제시한다. 여기에 피보나치 수열에 의한 분할과 나선, 기타 기하학적 요소들이 중첩되어 이 시각적 표상들이 수학적 사고의 틀 아래 조직된 닮음으로, 즉 구조적 유사성으로 전환된다. 작품 제목에 쓰인 ‘방법론’이라는 말은 작품에 대한 인식의 틀, 즉 회화의 구성에 대한 해석과 이해의 방식을 일컫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화면 우측의 작은 캔버스는 큰 캔버스와 닮았으면서도 동시에 차이가 있는데, 두 캔버스의 병렬 배열을 통해서 이미지가 어떻게 순환 가능하며, 또 어떻게 도식화되는지를 사고하게끔 만든다. 여기서 작가는 각각의 캔버스 또는 두 캔버스의 상황을 통해서 어떻게 닮았다고 보이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보다는, 닮음이 시각적 본질이 아니라 인식의 방식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두 그림에서 우리가 인식하는 닮음은 언어로 서술 가능한 것 이상인데, 형상과 기호, 규칙과 비례, 반복에 있어서 차이를 둠으로써, 닮음으로 허용되는 범위 자체부터 사유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방법론적 접근 A Methodological Approach>, 2025, oil on canvas, 65 x 65 cm
<평행 세계>(2025), <크고 작은 것>(2025), <10분의 9>(2025), <세 형제>(2025)는 각각 다른 층위들에 수학적 또는 분석적인 틀을 작동시켜 닮음을 구성하고 있으며, 관람자는 화면의 요소들을 통해 각각의 도형과 선, 위치의 관계를 추론하고 구조적 규칙을 상상하게 된다. 일례로 <크고 작은 것>은 바다라는 큰 물과 양동이의 작은 물을 대비시키면서도, 삼각형, 트라이포드 등으로 숫자의 반복도 암시한다. 또 두 개의 캔버스를 가로지르는 몇 개의 곡선은 화면 위에 시각적인 역동성을 부여하면서, 동시에 무언가(바람, 파도, 물방울 등)의 운동성의 궤도를 가시화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작품 역시 중앙의 바다 물결, 상하단에 그려진 양동이와 트라이포드, 이들과 상관 관계를 파악할 수 없는 뾰족한 삼각형들과 긴 곡선 궤도들에 의해 해석의 방향이 분산되고 있다. 이렇게 대상의 사실적인 묘사와 도식화된 그래픽이 혼재하는 상황은 스마트폰을 통해 접속하는 다양한 앱이나 디지털 기기들의 인터페이스를 통해서 우리는 친숙해져 있다. 특히 디지털 게임 인터페이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상황이다. 게임의 UI 디자인은 게임 유저들의 몰입감을 높여주면서도 게임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를 구성한다. 이때 게임의 세계관을 설명할 수 있는 배경에는 사실적인 묘사가 두드러지고, 유저들의 게임 수행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아이템이나 퀘스트에 대한 구조를 도식화하여 보여주곤 한다. 상이한 형식의 이미지들이 하나의 화면 위에서 공존할 수 있는 것은 게임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이질적이지 않게 된다. 이는 가장 오래된 매체인 회화라고 해서 예외일 필요는 없다. 그래서 조은시의 <크고 작은 것>은 이미지를 제시하고 해석하는 구조 자체를 하나의 화면으로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평행 세계 Parallel Worlds>, 2025, oil on panel, 20 x 26 cm
<크고 작은 것 Big and Small Things>, 2025, oil on canvas, 193.9 x 260.6 cm
<10분의 9 Nine-Tenths>, 2025, oil on canvas, 145 x 97.5 cm
<세 형제 Three Brothers>, 2025, oil on canvas, 33.4 x 53 cm
<크고 작은 것 Big and Small Things>, 2025, oil on canvas, 193.9 x 260.6 cm
<10분의 9 Nine-Tenths>, 2025, oil on canvas, 145 x 97.5 cm
<세 형제 Three Brothers>, 2025, oil on canvas, 33.4 x 53 cm
한편, <땅속 연대기>(2025)나 <관성적 태도>(2025)는 평면보다 공간 설치에 가까운 작업들이다. 두 작품에서 제목은 작품을 인식하는 언어적 지침으로 작동한다. 먼저 <땅속 연대기>라는 제목은 시간(연대기)과 장소(땅속)의 축적을 암시하는데, 땅속이라는 일반적으로는 비가시적인 공간과 연대기라는 시간적 질서를 결합해, 지층처럼 쌓인 사건들의 흔적을 시각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관성적 태도>는 관성이라는 물리학 개념을 연상시키면서도 태도라는 말을 통해서 윤리나 도덕, 또는 심리, 철학적인 층위로 의미를 확장시킨다. 또 형태적으로 그네는 진자 운동을 암시하여 관성의 시각적 장치 역할을 한다. 그네 안장에는 작은 그림이 놓여 있는데, 앞뒤로 각각 해와 달로 유추 가능한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 이들은 조석 현상을 일으키는 힘의 원천을 암시하면서 동시에 세계의 질서가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의 체계로 인해 유지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보이지 않는 질서나 체계에 대한 암시는 오늘날 우리의 일상적 삶을 패턴을 구성하고 행동 방식을 디자인하는 디지털 인터페이스에서도 보편적이다. 검색, 소비, 기록, 저장, 엔터테인먼트와 같은 퀘스트를 수행하는 동안 우리는 반복적인 감응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질서나 체계의 난이도를 파악한다.
<땅속 연대기 Parallel Worlds>, 2025, oil on panel, volcanic stone, 45 x 30 x 30 cm
<관성적 태도 Inertial Attitude>, 2025, Stainless, oil on panel, 210 x 146 x 61 cm
조은시의 회화는 외양의 닮음만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질서와 구조 속에 있는지 암시한다는 점에서 동시대적이다. 그의 회화에서 닮음은 단지 형태의 유사성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관계를 감각하고 사고하게 만드는 구조로 작용한다. 회화의 표면 위에서 사유의 계기를 작동시키는 그의 작업은, 재현을 넘어 구조의 인식을 유도하고, 관계와 질서의 암시로 확장된다. 결국 조은시에게 닮음은 단순한 시각적 유사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과 사유의 구조를 드러내는 방법론이며, 의미를 생성하는 회화적 동력이다. 그는 유사성 개념을 통해서 지식과 감각, 세계와 이미지 사이의 새로운 연결 가능성을 탐색하며, 이를 회화라는 오래된 매체의 범주에서 성실하게 실천하고 있다.
2024 / 오픈스튜디오 비평글 / 김다혜 큐레이터 (@issanghye)
김다혜
돌멩이, 유리 조각, 진흙, 내리는 비, 절벽, 피로한 발.
개개의 단어를 쉼표와 마침표를 이용해 하나의 문장으로 만들자 머리 속에서 곧바로 어떤 상황이 그려진다. 앞서 나열한 단어는 모두 인간의 걸음을 방해하고 상처 주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절벽을 마주한 이는 돌아서서 새로운 길을 찾았을까 아니면 빗물에 젖은 바닥을 밟고 미끄러져 절벽 아래로 떨어졌을까. 혹은 피로한 발과 내리는 비에 외출조차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조은시는 상황적⋅조형적으로 서로 닮은 요소들을 한 화면 아래에 배치하여 내러티브를 구축한다. 조형 요소들을 분석하고 읽어내려는 우리의 인지적 작용을 이용하여 상상의 사건을 발생시키고 그 전개 과정을 보여준다. <속상한 날 Distressed Day>에서 우리는 나무에서 떨어지는 붉은 색의 물체를 화면 오른편에 나열된 폭력적인 도구와 연결해 나무에 가해지는 폭력을 작품의 주제로 추측해 본다(도 1). 작품의 제목은 이러한 상상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배수진 Have One’s Retreat Cut Off> 역시 화면의 구성 요소들은 사건 발생의 메커니즘으로 기능하며, 배열된 사각 프레임을 연결하여 하나의 사건으로 읽게 만든다. 상공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전투기의 실루엣은 비행 슈팅 게임의 장면과 연결되어 그다음 상황을 예측하게 한다. 그렇다면 작가가 일련의 사건을 화면에 매번 등장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 1) <속상한 날 Distressed Day>, 2023, oil on canvas, 162.2 x 112.1 cm
숲 그리고 나무, 과일과 폭탄 그리고 운석과 사냥총 그리고 화산 폭발, 스프링클러 그리고 숲.
<같은 마음 Same Way>에서는 폭발하는 화산과 스프링클러의 분출 이미지의 닮음을 통해 이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도 3). 아래의 공룡 뼈가 암시하듯 하나는 생명체를 삼켜 죽음으로 데려갈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장을 촉진시키고 생명력을 부여할 것이다. 그러나 무언가 터져 나오듯 분출되는 모습은 매우 닮아있으며, 이는 작가의 작품에서 반복되는 파괴와 구축, 소멸과 재생이 사실은 이원 구조, 이원 체계가 아닌 하나의 세계라는 것을 의미한다. 작품들 속 구획된 화면은 자연과 문명, 동물과 인간의 이원적 대립의 장을 보여주고 그 차이를 강조하는 것이 아닌, 사실은 매우 닮아있는 동일한 하나의 세계임을 비교해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의 조형 언어를 빌려 말하자면 우리는 모두 나무로 숲이라는 전체 속에 속해있다.
(도 2) <자연의 섭리 The Providence of Nature>, 2023, oil on canvas, 72.7 x 53.0 cm
(도 3) <같은 마음 Same Way>, 2023, oil on canvas, 100.0 x 80.3 cm
나무 그리고 나무 그림 그리고 나무판자 그리고 가짜나무.
나아가 작가는 숲과 나무, 나무와 숲의 관계를 캔버스 화면 안 가상의 세계에만 구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실 세계로 확장하고자 한다. 구획된 화면 내에서만 순환하고 기능하던 요소들은 나무판자를 경유해 현실 세계와의 접촉을 시도한다. 가장 먼저 <가짜나무와 벌집 Fake Tree and Honeycomb>에서 실행되었다(도 4). 나무판자 위에 나무가 그려져 있다. 그러나 그려진 나무는 실제의 온전한 나무를 재현한 것이 아닌 가공된 나무 즉,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가짜 나무를 재현한 것이다. 캔버스 역할을 하고 있는 현실 세계의 나무판자는 판자 나무와 하나가 되어 재현된 판자 나무의 실제 뒷부분이 된다. 혹은 그림을 관념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받쳐주는 부수적인 역할이 아닌 판자 나무의 원형으로 숨겨진 실제 주인공일 수도 있다. 이렇듯 부분과 전체, 재현과 실재의 관계에 대해 유쾌하게 질문한다. <먼 친척 A Distant Relative>에서는 재현된 세계⋅모방된 세계에 있는 소용돌이와 이데아의 모방일지도 모를 현실 세계의 물을 연결하고, <말썽쟁이 Scallywag>에서는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마지막 장면을 차용해 가상의 세계를 벗어난 현실 세계로의 착지를 시도한다(도 5). 반대되는 물살이 만나 형성되는 소용돌이, 서로 다른 공기의 흐름이 만나 생성되는 태풍, 이들은 이제 현실 세계와 연결되었다. 우리는 더욱 커진 소용돌이와 태풍에 휩쓸리게 될까, 소용돌이와 태풍이 소멸된 공간에 서게 될까.
(도 4) <가짜나무와 벌집 Fake Tree and Honeycomb>, 2023, oil on panel, 80 x 30 x 35 cm
(도 5) <먼 친척 A Distant Relative>, 2023,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도 5) <먼 친척 A Distant Relative>, 2023,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